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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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이진성지(梨津城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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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

◆ 지정일시 : 1988. 12. 21

◆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1227외

◆ 시 대 : 조선시대

◆ 규 모 : 940m

◆ 종 류 : 석성
이진리 해안에 위치한 석축성이다. 이진성은 정유재란후인 선조 21년(1598)에 설진하여 인조 5년(1627) 만호진으로 승격하여 이 당시 쌓은 것으로 보여진다. 영암군에 속한 진성으로 고종 32년(1895) 폐진되었는데 「여지도서」에는 "군 남쪽 120리에 있고 성은 석축이다. 둘레는 1470척, 높이 8자, 치첩 334개소, 샘이 2개 있다."고 기록하고 종4품의 수군만호 밑에 군관 17명, 리 18명, 지인 5명, 사령 37명이 배치되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해남읍지」에 의하면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과 대변군관 12명, 진리 18명, 사령 6명, 군뢰 2명, 방군 271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문화유적총람」에는 "둘레 2.5㎞의 성지로 인조 26년(1648)에 이진수군만호를 두어 성을 축조하였고, 성주위로 바다 호수를 만들어 왜군이 침노하지 못하게 하였다 한다. 또 이진은 제주도 출입 통제소이기도 하였으며 제주도 군마와 사마를 수송하는 곳이기도 하였다하며, 마을안에 수군만호비 4기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성의 축조방법과 현황을 보면 남·북의 구릉지를 이용하여 축성한 남북장축의 타원형 진성으로 성벽은 내탁법에 의해 쌓았다. 성내에는 이진마을이 소재하는데 동문과 서문이 마을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너비 3m의 서문터에는 둘레 34m, 높이 5m, 너비 2.2m의 옹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외에도 지금은 파괴되었으나 남문터에는 이진리 김호준씨댁 대문 앞에 지름 10㎝, 장재윤씨댁에 보관중인 지름 18㎝의 홈이 패인 초석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총 연장 940m이다. 동벽은 길이 350m, 아래쪽 너비 390㎝, 위쪽너비 130㎝, 높이 200~270㎝, 서벽은 길이 280m, 아래쪽 너비 6m, 위쪽 너비 4m, 높이 430㎝로 거의 무너져 있다. 성벽주위에는 백자편과 각종 유물 등이 수습된다. 그리고 만호비 4기는 현재 이진초등학교 입구에 있다.

이 이진성은 축성시기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의 남도석성이나 낙안읍성에 비해 손색이 없고 주변의 달마산 봉수와 달도의 선소, 이진마을의 민가와 관련하여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