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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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대둔사(대흥사) 정조친필 서산대사화상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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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 지정일시 : 1990. 2. 24
◆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대흥사
◆ 시 대 : 조선시대
◆ 크 기 : 1매(175.5×69.8)
◆ 종 류 : 고문서
해남 대흥사는 서산대사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의 특명을 받아 제자인 유정(惟政)·처영(處英)과 함께 승병을 모집하여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되어 전쟁에 공을 세우고 입적한 뒤, 그의 의발을 모셨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후 180여년이 지난 정조 12년(1788)에는 대흥사의 천묵(天默)·계홍(戒洪)스님이 서산대사와 유정·처영을 모시고 사우건립을 모색하여 이듬해에 사우건립의 허가와 함게 '표충'이라는 사액을 받게 된다.

이것은 당시 호조판서 서유린이 서산대사의 사적과 사우 건립의 당위성을 왕에게 상세히 주청한 결과였다. 조정에서는 사액과 함께 예조정랑 정기환을 예관으로 파견하였다. 서산대사의 진영이 표충사에 봉안된 뒤 1749년 4월 8일 정조는 대사의 충절과 행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화상당명을 손수 짓고 써서 표충사에 내려 보냈다. '정조대왕신장'이라는 표시가 있는 이 유물은 꽃구름무늬채화가 그려진 담황색 비단에 위엄 있는 필치로 썼는데, 말미에는 '만기지가(萬幾之暇)', '홍재(弘齋)'라는 정조의 네모 인장이 찍혀 있어 정조의 친필임을 알 수 있다. 

이 화상당명은 금자병풍과 현판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금자병풍은 표충사 제향시에 사용되었는데 검정 비단(6폭, 각 117㎝×65㎝)바탕에 중간 4폭에는 금니로 화상당명을 쓰고 처음과 마지막 폭에는 금니로 대나무와 매화를 그렸다. 이 죽매도 자리에는 원래 해전도(海戰圖)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1894년 도난당하여 일본에 건너갔다가 1905년 반환되었으나 해전도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의 죽매도는 1906년 당시 주지로 있었던 경허(鏡虛)스님이 최병승(崔丙昇)으로 하여금 그리게 한 그림이며 병풍 4폭의 본문글씨는 필자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또 표충사 왼쪽벽에는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李書九)가 쓴 화상당명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