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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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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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에 해남지역에는 3개의 군현이 있었던 것으로 지지류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현산면과 화산면 일원에 성립되었던 새금현, 화원반도 일원에 성립되었던 황술현, 마산면, 계곡면과 산이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는 고서이현이다. 백제의 지방편제가 제도로서 확립된 것은 사비시대의 일로 소위 오방제라는 것이다. 오방제는 지방을 오방으로 나누어 각 방에 700-1200여의 군대를 두어 방령을 배치하고 예하에 6-10군을 거느리게 하는 제도였다. 그리고 군에는 3명정도의 군장을 두어 예하의 크고 작은 성 5-6개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지지류의 현이다.

지지류에 보이는 해남 3현은 남방구지하성 도무군에 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백제정부와 해남지방의 통념적 관계고 사실상 해남지방의 백제복속 시기나 형태는 아직 쉽게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 관계로 해남 3현의 성립을 백제 남부여정부의 성립과 때를 같이하는 538년으로 일단 정리하게 된다. 이것은 마한 잔존세력의 완전 백제복속을 시사하는 498년의 탐라복속에서 현산면 증산리 조산에서 발견된 백제석실분 사이의 연대다.
한편 마한 국읍세력의 활동무대였던 해남지방을 복속시키는데 있어 백제가 어떠한 정략적 방법을 썼으며 오방제하의 해남3현이 어떠한 형태에 있었는가 하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현산면 증산리 조산고분의 존재이다.
중산리 조산고분은 전형적인 백제의 지배층 묘제로 194점에 달하는 다양한 유물과 지배층의 유물이 확실한 무구(武具)나 마구류(馬具類)가 출토되어 이것이 오방제에 따른 방관의 신분이 아닌 웅진시대의 담로제와 같이 강력한 그리고 직접 왕권의 후원을 받는 세력을 대표하는 신분임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백제의 해남복속의 과정이나 지배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임을 시사하는 바로써 지지류의 3현이나 기록에 없는 기타지역, 예컨대 군곡세력이나 옥녀봉세력 그리고 북일.옥천세력 또한 남방구지하성이 아닌 조산고분세력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 지역에 있어서 마한의 강력한 잔존세력으로서의 소위건국에 존재를 재삼확인시켜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