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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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명량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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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보물 제503호

◆ 지정일시 : 1969. 6. 16

◆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1186-7

◆ 시 대 : 조선시대 1688년(숙종 14)

◆ 크 기 : 높이 2.67m

◆ 재 료 : 화강암

◆ 종 류 : 기념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명량대첩(鳴梁大捷)을 기념하여 1685년(숙종11)∼1688년(숙종 14)에 걸쳐 세운 비이다. 1597년(선조 30) 9월 이순신이 원균(元均)의 무고로 통제사에서 물러났다가 원균의 패전으로 다시 기용되어 우수영 월경인 진도 벽파진에 수영(水營)을 옮기고 우수영∼진도간의 급류를 이용하여 몰려오는 133척의 왜적함대를 불과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일본군의 선단을 격파하였는데 이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명량대첩은 이순신이 재기한 직후 큰 기적을 올린 대회전(大會戰)으로 충무공이 세운 전공의 중흥이라 일컬으며, 충무공의 용병과 지리(地理)에 뛰어남은 귀신도 가동케 하였으며, 공의 임난토적(臨難討賊)에 있어 결책출기(決策出奇)함은 옛 명장들도 이에 미치지 못할 뿐아니라 충의의 분발은 해와 달을 꿰뚫는다고 하였다.

명량대첩비는 조선시대 석비(石碑)의 일반형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방형(方形) 지대석(地臺石)과 문양이 조각된 장방형(長方形) 비좌(碑座)를 갖추고, 그 위에 신석(身石)을 꽂고 운용문(雲龍紋)을 조각한 장방형 옥개석을 얹었다. 비명은 '유명조선국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有明朝鮮國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이며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쓴 전액(篆額)은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이다. 1685년 홍문관대제학 이민서(李敏敍)가 문장을 썼고, 글씨를 쓴 사람은 판돈령부사 이정영(李正英)의 해서이며, 제액전서는 홍문관대제학오위도총제부도총관 김만중(金萬重)이 했다. 끝부분에는 "崇禎後乙丑三月日書嘉善大夫行全羅右道水軍節度使朴新胄戊辰三月日立監役出身韓時達"이라 맺어 비문이 씌어진 것이 1686년이지만, 석비가 세워진 것은 1688년 3월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朴新胄)에 의해서 세워졌다. 이 비는 일제의 박해로 피해를 입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졌던 것을 1945년 해방 이후 우수영 유지들에 의해 원래 세워졌던 장소로 회수되었다.